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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통해 소개됐던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의 유서깊은 문화유산과 아드리아해의 해변 휴양지로 단연 눈길을 끌었다. 고대 로마황제의 휴양지였던 스플리트, 중세 라구사 공화국의 수도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한번쯤 가보고 싶은 로망을 자극했다. 그런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등 환상적인 자연이 살아 숨쉬고, 현대적인 문명에도 영향을 끼친 도시를 찾아 떠나는 도시 여행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 물의 나라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은 초록과 물의 세계다. 숲과 생명체들이 서로 빛으로 연결되고, 그 빛은 폭포처럼 떨어진다. 만일 판도라 행성과 닮은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열여섯 개의 호수와 아흔 두 개의 폭포라 쏟아지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선경(仙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물의 나라’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가 있는 가 하면, 강바닥 전체가 아래로 꺼져 옆으로 넓게 쏟아지는 폭포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폭포수 바로 옆까지 걸어다닐 수 있도록 설계가 돼 있다는 .이다. 나무로 만든 길을 따라 강물 위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폭포의 압도적인 물줄기를 코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나 한탄강 주변의 폭포는 현무암 지형에서 주상절리가 발달하고, 빗물이 스며들어 땅이 꺼지면서 폭포가 생겨난다. 반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는 카르스트 지형의 석회암 지대다. 석회암이 녹아 생긴 침전물이 이끼와 수초를 만나 자연제방을 만들어낸다.
석회화댐이 물을 가두면 호수가 되고, 강물이 계단식으로 흘러넘치며 수많은 폭포가 생겨낸다. 그래서 플리트비체의 물빛은 햇빛의 각도와 석회 성분, 수심과 미생물에 따라 청록에서 짙은 에머랄ㄷ까지 시시각각 달라진다. 현무암지대에서는 땅이 꺼지면서 폭포가 생기고, 석회암지대에서는 자연이 쌓아올린 댐이 호수와 폭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크게 상부호수와 하부지역 호수로 이루어져있다. 상부와 하부지역을 잇는 코자크 호수에는 전기 유람선이 다닌다. 엔진 소리도, 기름 냄새도 없이 호수 위를 미끄러지는 20분 남짓. 들리는 것이라곤 새소리와 멀리서 쏟아져내리는 폭포의 물소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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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압도적인 폭포는 하부 호수군 끝자락에 있는 벨리키 슬라프(Veliki Slap)다. 높이 약 78m.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깊은 협곡 절벽 끝에서 물이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유낙하하는 모습은 백두산 천지에서 떨어지는 장백폭포처럼 장쾌하다.
산책로에는 플리트비체의 독특한 지형을 보존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두 명의 인물을 기리는 명판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식물학자인 이보 페발렉(1893-1967)은 플리트비체의 비경(秘經)이 탄생하는 비밀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호수와 폭포를 만들어내는 석회화 댐이 살아 있는 이끼, 조류,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건축이라는 사실이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호수와 폭포를 만들어내는 석회화 댐을 묘사해놓은 안내도.
이는 곳 보존의 논리로 이어졌다. 호수와 폭포가 ‘생명체의 작품’이라면 물의 화학 조성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이 풍경 전체가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페발렉은 1920년 베를린에서 플리트비체 자연 보호의 필요성을 주제로 강연했고, 1949년 플리트비체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또 한명은 1958년부터 공원에서 일했던 요십 모브찬이었다. 플리트비체에서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이 사람의 철학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폭포를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서 감상하도록 돼 있어 아무래도 감흥이 덜하다. 그런데 플리트비체에는 모브찬이 디자인한 22km에 이르는 밤나무 목재 산책로를 따라 강을 가로지르며 폭포 바로 코 앞까지 다가갈 수 있다. ‘자연에 최대한 가까이, 그러나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그의 철학은 유럽의 국립공원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플리트비체의 원시림 속에는 갈색곰과 늑대, 희귀 조류의 보금자리다. 국립공원 숲 속에 자리잡은 예제로 호텔로 돌아온 후. 창을 여니 멀리 보이는 폭포에서 쏴~하는 물소리가 여전히 밤의 적막을 깨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뒤로 하고 수도 자그레브로 향하던 중에 한적한 시골마을인 스밀랸에 들렀다. 20세기 초 ‘전기의 아버지’로 불렸던 전설적인 인물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태어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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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테슬라(TESLA)’로 우리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 바로 옆 에 있는 하얀 목조 건물. 1856년 7월 10일 자정 무렵, 니콜라는 번개가 치던 밤에 테슬라는 이 곳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세르비아 정교회 사제였다. 기념관에는 테슬라의 어릴 적 사진과 함께 테슬라 코일, 테슬라 터빈, 유도 전동기 등 발명품들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돼 있다.
젊은 테슬라는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엔 에디슨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곧 갈라선다. 전기 상용화에 있어 에디슨은 직류(DC)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테슬라는 교류(AC)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직류는 멀리 보내면 전력 손실이 컸던 반면, 교류는 변압기로 전압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먼 거리로 전기를 값싸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치열한 표준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조명과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소가 교류로 결정되면서 승부는 기울었다. 오늘날 우리 집 콘센트에 흐르는 전기부터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자동차까지.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식 전기 시스템을 쓴다.
테슬라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국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가 태어난 스밀랸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고,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되었고, 1990년대 초 유고 연방이 해체되며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섰다. 테슬라가 태어난 땅은 크로아티아지만, 핏줄과 종교적 정체성은 세르비아계다. 그리고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시민권을 얻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크로아티아는 2006년을 ‘테슬라의 해’ 선포하고 스밀랸에 이 기념관을 세웠고, 세르비아는 화폐와 공항 이름에 니콜라 테슬라를 새겨넣었다.
크로아티아의 해변 휴양도시 오파티아는 ‘셀럽들의 휴양지’였다. 세계 각국의 나무가 우거진 안졸리나 공원의 벽화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봉 대신 시선을 던지고, 이사도라 던컨이 맨발로 서 있다.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안톤 체호프, 제임스 조이스, 로버트 드니로, 커크 더글라스까지…. 이 도시에서 휴양지로 다녀갔던 예술인과 지성인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빌라 안졸리나는 유럽을 가로지르던 전설의 야간열차 ‘오리엔트 특급’을 운행하던 철도회사가 호텔로 운영하던 곳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1901년 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회복을 위해 오파티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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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회복기의 평온 속에서 말러는 교향곡 4번을 다듬었다. 죽음을 통과한 남자가 가장 밝고 천진한, 어린아이가 노래하는 천국을 그린 그 교향곡을 아드리아해의 요양지에서 매만졌던 것이다.
● 자그레브의 대포소리
자그레브 언덕 위 옛 도시 고르니 그라드. 한낮 정오의 좁은 골목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의 창문에는 작은 대포가 포신을 내밀고 있다.
“10, 9, 8, 7, 6…”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고, 흰색 연기와 함께 ‘꽝!’하는 대포음이 울렸다. 여행객들은 귀를 막거나 심장을 부여 잡았고, 곧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1877년부터 이 대포소리는 도시 교회의 종지기들에게 ‘정확한 정오’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표준시 알림, 일종의 아날로그 라디오 시보(時報)인 셈이다.
유럽에는 정오나 정시마다 벌어지는 시계탑 퍼포먼스가 즐비하다. 프라하 천문시계의 ‘사도 행진’, 뮌헨 마리엔 광장의 글로켄슈필 인형극, 브뤼셀·스트라스부르의 기계 인형들까지…. 관광객들이 찍는 시계탑 퍼포먼스 사진과 영상들은 SNS를 장식하고, 도시를 세계에 알린다. 자그레브는 인형이 춤추는 대신 진짜 대포가 굉음을 낸다. 시각(視覺)이 아닌 청각과 진동, 그리고 놀라움의 스펙터클이다.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서울 남산이나 수원 화성,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던 명량, 한산대첩의 격전장에서 봉화를 피우거나 천자총통을 쏘는 퍼포먼스도 괜찮을 듯하다.
자그레브에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넥타이 박물관(Cravaticum)’도 있다. 프랑스어로는 넥타이를 ‘크라바트(Cravat)’라고 한다. 1618~1649년. 30년 전쟁이 유럽을 갈기갈기 찢고 있던 시절. 루이13세 프랑스는 크로아티아 용병을 끌어들였다. 크로아티아 병사들은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용맹하게 싸웠다. 바로 크로아티아의 소녀와 아내들이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과 연인들을 위해 안전한 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짰던 실크 손수건이었다.
이를 프랑스 사람들이 ‘크로아트풍(à la Croate)’라고 불렀고, ‘크라바트’라는 단어로 남게 됐다. 박물관에는 보우 타이, 애스콧, 장미넥타이 등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넥타이를 전시하고 있다. 또 한켠에는 넥타이 모양의 케잌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로 운영하던 곳이다
● 물의 나라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판도라 행성은 초록과 물의 세계다. 숲과 생명체들이 서로 빛으로 연결되고, 그 빛은 폭포처럼 떨어진다. 만일 판도라 행성과 닮은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열여섯 개의 호수와 아흔 두 개의 폭포라 쏟아지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선경(仙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물의 나라’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가 있는 가 하면, 강바닥 전체가 아래로 꺼져 옆으로 넓게 쏟아지는 폭포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폭포수 바로 옆까지 걸어다닐 수 있도록 설계가 돼 있다는 .이다. 나무로 만든 길을 따라 강물 위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폭포의 압도적인 물줄기를 코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나 한탄강 주변의 폭포는 현무암 지형에서 주상절리가 발달하고, 빗물이 스며들어 땅이 꺼지면서 폭포가 생겨난다. 반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는 카르스트 지형의 석회암 지대다. 석회암이 녹아 생긴 침전물이 이끼와 수초를 만나 자연제방을 만들어낸다.
석회화댐이 물을 가두면 호수가 되고, 강물이 계단식으로 흘러넘치며 수많은 폭포가 생겨낸다. 그래서 플리트비체의 물빛은 햇빛의 각도와 석회 성분, 수심과 미생물에 따라 청록에서 짙은 에머랄ㄷ까지 시시각각 달라진다. 현무암지대에서는 땅이 꺼지면서 폭포가 생기고, 석회암지대에서는 자연이 쌓아올린 댐이 호수와 폭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크게 상부호수와 하부지역 호수로 이루어져있다. 상부와 하부지역을 잇는 코자크 호수에는 전기 유람선이 다닌다. 엔진 소리도, 기름 냄새도 없이 호수 위를 미끄러지는 20분 남짓. 들리는 것이라곤 새소리와 멀리서 쏟아져내리는 폭포의 물소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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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압도적인 폭포는 하부 호수군 끝자락에 있는 벨리키 슬라프(Veliki Slap)다. 높이 약 78m.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깊은 협곡 절벽 끝에서 물이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유낙하하는 모습은 백두산 천지에서 떨어지는 장백폭포처럼 장쾌하다.
산책로에는 플리트비체의 독특한 지형을 보존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두 명의 인물을 기리는 명판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식물학자인 이보 페발렉(1893-1967)은 플리트비체의 비경(秘經)이 탄생하는 비밀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호수와 폭포를 만들어내는 석회화 댐이 살아 있는 이끼, 조류,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건축이라는 사실이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호수와 폭포를 만들어내는 석회화 댐을 묘사해놓은 안내도.
이는 곳 보존의 논리로 이어졌다. 호수와 폭포가 ‘생명체의 작품’이라면 물의 화학 조성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이 풍경 전체가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페발렉은 1920년 베를린에서 플리트비체 자연 보호의 필요성을 주제로 강연했고, 1949년 플리트비체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또 한명은 1958년부터 공원에서 일했던 요십 모브찬이었다. 플리트비체에서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이 사람의 철학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폭포를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서 감상하도록 돼 있어 아무래도 감흥이 덜하다. 그런데 플리트비체에는 모브찬이 디자인한 22km에 이르는 밤나무 목재 산책로를 따라 강을 가로지르며 폭포 바로 코 앞까지 다가갈 수 있다. ‘자연에 최대한 가까이, 그러나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그의 철학은 유럽의 국립공원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플리트비체의 원시림 속에는 갈색곰과 늑대, 희귀 조류의 보금자리다. 국립공원 숲 속에 자리잡은 예제로 호텔로 돌아온 후. 창을 여니 멀리 보이는 폭포에서 쏴~하는 물소리가 여전히 밤의 적막을 깨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뒤로 하고 수도 자그레브로 향하던 중에 한적한 시골마을인 스밀랸에 들렀다. 20세기 초 ‘전기의 아버지’로 불렸던 전설적인 인물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태어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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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테슬라(TESLA)’로 우리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 바로 옆 에 있는 하얀 목조 건물. 1856년 7월 10일 자정 무렵, 니콜라는 번개가 치던 밤에 테슬라는 이 곳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세르비아 정교회 사제였다. 기념관에는 테슬라의 어릴 적 사진과 함께 테슬라 코일, 테슬라 터빈, 유도 전동기 등 발명품들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돼 있다.
젊은 테슬라는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엔 에디슨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곧 갈라선다. 전기 상용화에 있어 에디슨은 직류(DC)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테슬라는 교류(AC)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직류는 멀리 보내면 전력 손실이 컸던 반면, 교류는 변압기로 전압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먼 거리로 전기를 값싸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치열한 표준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조명과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소가 교류로 결정되면서 승부는 기울었다. 오늘날 우리 집 콘센트에 흐르는 전기부터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자동차까지.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식 전기 시스템을 쓴다.
테슬라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국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가 태어난 스밀랸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고,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되었고, 1990년대 초 유고 연방이 해체되며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서로 다른 나라로 갈라섰다. 테슬라가 태어난 땅은 크로아티아지만, 핏줄과 종교적 정체성은 세르비아계다. 그리고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시민권을 얻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크로아티아는 2006년을 ‘테슬라의 해’ 선포하고 스밀랸에 이 기념관을 세웠고, 세르비아는 화폐와 공항 이름에 니콜라 테슬라를 새겨넣었다.
크로아티아의 해변 휴양도시 오파티아는 ‘셀럽들의 휴양지’였다. 세계 각국의 나무가 우거진 안졸리나 공원의 벽화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봉 대신 시선을 던지고, 이사도라 던컨이 맨발로 서 있다.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안톤 체호프, 제임스 조이스, 로버트 드니로, 커크 더글라스까지…. 이 도시에서 휴양지로 다녀갔던 예술인과 지성인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빌라 안졸리나는 유럽을 가로지르던 전설의 야간열차 ‘오리엔트 특급’을 운행하던 철도회사가 호텔로 운영하던 곳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1901년 봄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회복을 위해 오파티아를 찾았다
모바일 야마토다운
. 이 회복기의 평온 속에서 말러는 교향곡 4번을 다듬었다. 죽음을 통과한 남자가 가장 밝고 천진한, 어린아이가 노래하는 천국을 그린 그 교향곡을 아드리아해의 요양지에서 매만졌던 것이다.
● 자그레브의 대포소리
자그레브 언덕 위 옛 도시 고르니 그라드. 한낮 정오의 좁은 골목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의 창문에는 작은 대포가 포신을 내밀고 있다.
“10, 9, 8, 7, 6…”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고, 흰색 연기와 함께 ‘꽝!’하는 대포음이 울렸다. 여행객들은 귀를 막거나 심장을 부여 잡았고, 곧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1877년부터 이 대포소리는 도시 교회의 종지기들에게 ‘정확한 정오’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표준시 알림, 일종의 아날로그 라디오 시보(時報)인 셈이다.
유럽에는 정오나 정시마다 벌어지는 시계탑 퍼포먼스가 즐비하다. 프라하 천문시계의 ‘사도 행진’, 뮌헨 마리엔 광장의 글로켄슈필 인형극, 브뤼셀·스트라스부르의 기계 인형들까지…. 관광객들이 찍는 시계탑 퍼포먼스 사진과 영상들은 SNS를 장식하고, 도시를 세계에 알린다. 자그레브는 인형이 춤추는 대신 진짜 대포가 굉음을 낸다. 시각(視覺)이 아닌 청각과 진동, 그리고 놀라움의 스펙터클이다.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서울 남산이나 수원 화성,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던 명량, 한산대첩의 격전장에서 봉화를 피우거나 천자총통을 쏘는 퍼포먼스도 괜찮을 듯하다.
자그레브에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넥타이 박물관(Cravaticum)’도 있다. 프랑스어로는 넥타이를 ‘크라바트(Cravat)’라고 한다. 1618~1649년. 30년 전쟁이 유럽을 갈기갈기 찢고 있던 시절. 루이13세 프랑스는 크로아티아 용병을 끌어들였다. 크로아티아 병사들은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용맹하게 싸웠다. 바로 크로아티아의 소녀와 아내들이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과 연인들을 위해 안전한 귀환을 바라는 마음으로 짰던 실크 손수건이었다.
이를 프랑스 사람들이 ‘크로아트풍(à la Croate)’라고 불렀고, ‘크라바트’라는 단어로 남게 됐다. 박물관에는 보우 타이, 애스콧, 장미넥타이 등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넥타이를 전시하고 있다. 또 한켠에는 넥타이 모양의 케잌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로 운영하던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