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옷 입어주세요.”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아시아드 보조경기장 400m 육상트랙. 무리를 지어 달리는 사람들 가운데 상의를 벗은 남성이 보이자 경비원이 이렇게 제지했다. 남성이 계속 달리자 경비원이 다시 경고했고, 그는 “기록 측정 중인데 잠시 후 입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여름철 상의를 벗고 도심 곳곳을 달리는 이른바 ‘상탈 러닝족’이 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상탈 러너들은 “법에 어긋나지 않고 타인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부 시민은 “공공장소에서는 최소한의 복장을 갖춰야 한다”며 불편함을 호소한다.
현행법상 남성이 상의를 벗고 달리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근거는 없다. 경범죄처벌법상 과다 노출은 공개된 장소에서 성기나 엉덩이 등 주요 신체 부위를 노출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다. 공연음란죄 역시 공개된 장소에서 음란한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만큼 단순히 상의를 벗고 달린 것만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최근 논란이 커진 배경에는 급증한 러닝 인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무더운 여름이면 달리기를 쉬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가을철 주요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기록 향상을 위해 폭염이나 장대비에도 달리는 사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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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탈 러너들은 땀에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고 무게가 늘어나거나 쓸림이 생겨 상의를 벗는 것이 편하다고 주장한다. 상의를 입고 달리면 노출된 부위에만 선탠 자국이 남아 몸을 고르게 태우기 위해 벗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몸매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육상트랙뿐 아니라 해운대·광안리 등 해변과 부산시민공원, 온천천 같은 야외 공간에서도 상탈 러너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민도 적지 않다. 어린이와 여성 등 다양한 시민이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최소한의 복장을 갖추고 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탈 러너를 막아달라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기도 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오후 부산 수영구 민락동 해변가에서 상의를 벗은 남성이 뛰고 있다며 ‘과다 노출’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해당 러너를 찾지는 못했다.
반면 러너들은 막연한 불쾌감을 이유로 상탈 러닝을 혐오하듯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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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러너 지원 공간인 ‘러닝 스테이션’을 조성하는 등 시민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장려하는 만큼, 러너와 일반 시민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체육 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40대 러너 김모 씨는 “이용자가 적은 새벽이나 심야 시간대에는 트랙에서 상의를 벗고 달리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시행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고심하고 있다. 부산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시 체육시설 관리 조례를 근거로 상의 탈의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며 “다만 ‘옷을 벗고 뛰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주느냐’고 반발하면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차원의 명확한 지침 마련과 안내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조우정 한국해양대 해양스포츠학과 교수는 “명확한 트랙 이용 수칙이 안내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비원이 임의로 운동을 중단시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해변 등 개방된 공간과 달리 지자체가 관리하는 트랙에서는 적절한 운동복 착용 등의 내용을 담은 이용 수칙을 곳곳에 부착해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문수 동의대 경기지도학과 교수는 “복장뿐 아니라 트랙 안쪽 레인일수록 빠른 주자가 이용한다는 내용 등 기본적인 스포츠 에티켓을 담은 지침을 부착해 시민과 러너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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