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시럽 뿌리기 표지
타인의 일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이 요즘 시대의 미덕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관심은 물론 도움조차 주고받지 않는 것이 일상의 매너가 됐다. 한마디로 남의 일은 모르는 게 상책인 셈이다.
신간 ‘상처에 시럽 뿌리기’에 실린 이영주의 단편 ‘모르는 개 산책’의 주인공도 그렇게 살아간다. 아이 교육 때문에 강남에 사는 그는 아들 친구가 학교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지만, 골치 아픈 일에 엮일까 우려해 애써 외면한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려고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구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젊은 여자 의뢰인과 접촉을 최소화한 채 정해진 시간에만 개를 산책시키고 수고비만 챙긴다. 그러다 어느 날 개 주인이 살해되면서 그의 태도에 균열이 생긴다. 타인의 삶에서 관심을 거두고 자기 안에만 머물던 그는 조금은 알게 된 개 ‘초코’를 데리러 나선다.
‘상처에 시럽 뿌리기’는 이처럼 외면하거나 묻어뒀던 기억과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이영주를 비롯해 원영원, 강다운, 김나은, 신은솔, 이비 등 신인 작가 6명의 소설과 시를 묶었다. 이들은 아직 신춘문예나 문학상과 같은 기성 등단 방식은 거치지 않았지만, 한국문학의 샛별이 될 작가들로 꼽힌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끊어져버린 관계와 오래된 기억을 품고 산다. 원영원의 ‘여름의 갈래에서’에서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말없이 집을 나섰던 아버지의 여정을 성장한 아들의 시。에서 되짚는다. 김나은의 ‘좋은 여자’에서는 15년 만에 이름과 얼굴을 바꾼 채 말기 암 환자가 돼 나타난 엄마와 딸이 다시 마주한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기프트전환
. 신은솔의 ‘그림자 밟기’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화자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과정을 그린다. 강다운의 시 다섯 편은 어긋난 관계와 단절 속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연결되려는 존재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비의 시 다섯 편은 사회적 연대의 현장으로 시선을 넓혀 갈등과 상처 속에서도 함께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그린다.
책 제목은 ‘상처에 소금 뿌리기’라는 관용구를 비튼 것이다. 소금 대신 달콤하고 끈적한 시럽을 뿌린다고 상처가 곧바로 낫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심스레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고 연결되는 출발。이 될 수 있다. 나뿐 아니라 타인의 상처까지 외면하지 않을 작은 용기를 건넨다. 1만 4000원.
럽 뿌리기 표지